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경제회복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는 반면, 전문가 및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부자·대기업 위주의 감세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5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2024년 세법개정안’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상속·증여세율 하향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 ▲밸류업 기업에 대한 금 감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등 다양한 감세 정책이 포함됐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논쟁의 대상이었던 상속세다. 정부는 상속세 최저세율 10%가 적용되는 구간을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상향했다. 또한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낮추고 최고세율 적용 구간도 ‘3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변경했다. 최저세율 적용 구간은 확대하고 최고세율은 낮춰 상속세 부담을 줄인 것. 또한 정부는 자녀 1명당 상속세 공제금액을 기존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우리나라 상속․증여세 세율 및 과세표준은 물가·자산가격상승 등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후 유지돼왔다”라며 “OECD 회원국 평균 상속세 최고세율(26%) 및 주요국 상속세율 수준을 감안해 상속세율을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도 폐지된다. 매출액 5000억원 이상 기업의 경우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20% 더 비싸게 평가한다. 경영계에서는 해당 제도가 상속세 부담을 지나치게 키워 기업 승계 및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한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는데, 이번 세법개정안에서는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내용도 제시됐다.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공시·이행하고 주주환원을 확대한 밸류업 우수기업에 대해서는 주주환원금액 5% 초과 증가분에 대해 5%의 세액공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한 내년 1월 1일 시행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하고, 가상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도 2년 뒤인 2027년 1월 1일로 시행 시기를 연기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19일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시행 성과를 우선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가상자산 거래 관련 국제적 정보교환이 시작되는 2027년부터 해외거래 검증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 재계, “세법개정안, 경제회복 마중물 될 것”
재계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대해 대체로 환영의 뜻을 밝히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5일 논평을 내고 “1999년 이후 25년 만의 과세체계 개편과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 폐지 등 상속세제의 전면적 개편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며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일몰 연장, 통합투자세액공제율 상향 등 세제지원 강화도 첨단산업 경쟁력 제고와 기업 투자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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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 또한 이날 논평에서 “‘2024년 세법 개정안’은 기업 투자여력 증진을 통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동시에, 저평가된 주식시장의 활력 증진과 민생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적용기한 연장, 상속세 최고세율 10%p 인하 등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기업의 영속성을 높여 우리 조세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계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법인세율 인하가 제외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한경협은 “법인세율 인하, 투자·상생협력 촉진세제 합리화 등 법인세 과세체계의 개편 방안이 포함되지 않은 점은,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라며 “향후 입법 과정에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과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전문가·시민단체 “세수감소 무시하고 대기업·부자 위주 감면” 비판
반면, 전문가 단체 및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세법개정안이 세수 부족을 고려하지 않은 대기업·부자 위주의 감세 정책으로 채워졌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세무사회는 25일 논평을 내고 “경제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한 세제개편은 필요하지만 감세혜택의 특정계층 편중으로 중소기업과 보통 국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번 세법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세무사회는 “투자와 고용에 파격적인 감면을 이어가거나 늘리고 있고, 심지어는 배당을 늘리면 법인세까지 깎아주는 ‘기업 밸류업’ 조세감면까지 등장했지만, 이 또한 대부분의 혜택은 대기업이나 상장기업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기업밸류업을 위해 ‘대기업혜택 몰아주기’를 하면서도 소상공인과 일반 국민 등 조세약자에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로 지원되는 합리적인 조세감면은 ‘비과세·감면 축소’하겠다는 것은 과도하게 편중된 정책목표에 매몰되어 조세제도의 합리적 운용이라는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대주주 보유주식 20% 할증평가 폐지에 대해서도 “주식평가의 적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해당되는 비상장주식의 평가는 실제 시가보다 훨씬 높게 나오는 평가방식으로 엄청난 세 부담을 하고 있어 이를 함께 검토해야 함에도 일률폐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투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 과세를 유예한 것에 대해서는 “조세제도 합리화라는 정책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원리까지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무사회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가 입법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도입한 제도를 시행하기도 전에 이를 부정하고 다시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 훼손은 물론 국민의 성실납세 의식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또한 이날 논평을 내고 이번 세법개정안을 “자산과세를 줄줄이 폐지·유예·완화하고 재벌대기업 공제 연장 상향 등을 골자로 한 기업·대주주·부자감세”라고 평가했다.
특히, 세수 결손을 고려하지 않은 감세 일변도의 정책으로 재정정책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참여연대는 “지난 2년간 부자감세로 2028년까지 89.3조원의 세수감소가 전망되는데,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인해 2029년까지 18.4조원의 세수감소가 추가될 것”이라며 “지난해 56.4조원 역대급 세수결손 사태가 벌어졌고,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세금이 덜 걷히고 있는데도 반성도 성찰도 없이 해묵은 낙수효과에 기댄 감세정책만 내놓는 윤석열 정부가 한심스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빚내서 빚 갚고 세금 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재정지출이지만, 경제정책 실패와 부자감세로 세수결손 조기경보가 2년 연속 울린 무능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며 “정부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국회가 부디 제 역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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