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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권위주의와 방임주의 교육 사이에서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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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의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피하지 말고 답을 해야 한다. 다소 번거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만일 세상에 애초부터 절대적으로 옳은 방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옳은 것이라면, (도덕적 상대주의가 맞는 것이라면) 위의 질문은 그 자체로 틀린 질문이 된다. 그런 세계관 안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다음세대에게 특정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없어진다. 어떤 면에서는 그저 먹이고 재우고 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의술⋅기술⋅경영⋅법 등의 실용적인 학문이 각광을 받는 반면, 정치⋅ 사회⋅도덕⋅문학과 같은 사회 저면에 흐르는 가치에 대한 교육은 약화된다. 사회 구성원들이 물질적인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데에 열심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서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거나 내면을 가다듬는 일들은 일정 부분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데에 타협점을 갖는다.

 

그렇기에 그런 사회에서는 ‘어떤 가치를 갖고 살아갈 것인가’는 그저 사회 각 구성원 스스로의 몫으로 남는다.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란 것은 없으니 그저 각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공존, 공동번영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적자생존, 각자도생 등의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회가 된다.

 

듣다 보니,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놀랍게도 (혹은 안타깝게도) 위에서 기술한 거의 대부분의 상황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동안 우리의 교육이 그러했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교육에서는 도덕 기준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시대적으로 교사 중심의 교수법에서 학생 중심의 교수법으로 교육학의 흐름이 바뀐 데다가 과거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었던 학생 지도법에 대한 반감이 겹치면서, 교육의 무게 추가 정반대 극단으로 향한 터다.

 

과거 교육이 학생들에게 국가와 교사와 규율을 향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스파르타식 방식이었다면, 최신 교육은 정확히 그 반대를 향했다. 학생들에게 그 무엇이라도 절대 강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세련된 교육이라는 생각이 교실을 지배했다. 물론 그것은 일정 부분 틀리지 않은 생각이었다. 강제하지 않고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당연히도 그것이 최선이다. 문제는 그 추세가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영역에까지 미쳤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그른 행동을 훈계하는 일에 제약을 받았다. 교육의 무게추는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지나 도덕적 상대주의에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우리의 교육은 사실상 방임에 가까워졌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유럽을 위시한 선진국들은 이미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서 그 일을 겼었다. 먼저 겪었기에 그에 대한 성찰도 먼저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타산지석 삼지 않았다.

 

“독일은 오랫동안 교육적인 부분에서 양극단을 오갔습니다. 나치와 공산주의 정권에서는 훈련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갔고, 독재가 끝난 후에는 아예 훈련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지요. 독재의 반작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권위주의 교육으로 치우쳤습니다. 치우침은 교육적으로 매우 위험한 선택인데도 말이지요.“ _ 베른하르트 부엡 (독일 살렘학교 교장)

 

독일 사회가 겪었던 상황이 우리의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우리 역시 독재와 권위주의 사회에서 지나치게 훈련을 강조하다가 그 시대가 끝난 후에는 아예 훈련을 기피하는 탈권위 교육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최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화 시대에는 권위주의 하에서 모든 인권의 가치가 억눌렸기 때문에 인권적 가치를 최대한 확장하는 게 선이었고, 실제로 좋은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개의 좋은 가치가 충돌하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아동 학대가 사회 어느 영역에서도 없어야 한다'는 가치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너무 힘들다'고 하는 교사들의 절규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민주적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체적으로 수긍되는 내용이고, 그가 균형 있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긴 재임 기간 동안 선진국에서 이미 문제가 된 상황을 분별없이 답습하여 우리 사회의 교육의 추가 반대 극단으로 치우쳐버리게 만든 일에 대한을 비판을 그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조 교육감과 같은 나의 선배 세대는 철저한 권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런 교육의 와중에도, 아니 그런 교육에 맞서 그들은 민주화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 그들은 ‘나의 자녀 세대는 나와 같은 교육은 받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교육을 해 왔을 것이다. 분명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던 탓에 오늘날의 교육은 탈권위를 넘어 방임주의에 이르렀다.

 

지금이라도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구시대의 교육과 현 시대의 교육, 그러니까 권위주의 교육과 방임주의 교육, 그 양극단의 중간 어디 즈음에서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인식론적 상대주의는 유지하되 도덕적 상대주의에서 돌이키는 일,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 개혁이다.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이송용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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