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주택시장 상승세를 진정시키고자 ‘8·8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지만 주택공급 확대 방안 이후 수도권 집값도, 가계대출도 더 상승하는 국면이다.
2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둘째 주(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주 대비 0.32% 오르며 5년 1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정부가 8·8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놨고, 통상 거래가 뜸한 휴가철 비수기인데도 집값이 크게 치솟으면서 21주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지방은 하락 흐름이 이어져 서울과 일부 수도권 중심의 과열로 격차는 더 벌어지는 모습이다.
서울 주택시장 상승세를 진정시키고자 정부가 지난 8일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통상 대책 발표 이후 2주 정도는 지나야 시장 반응이 나오는 경향이 있어 효과를 판단하기엔 아직 다소 이르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또 대부분 10년은 되어야 공급 물량이 현실화할 대책인데다 금리인하 기대감도 오르면서 매수세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7월 2%대로 줄었고, 실업보험 청구자도 감소해 9월 미국 기준금리가 0.25%나 0.5%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이 경우 국내 기준금리도 10월에 인하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통상 금리가 낮아지면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쏠린다.
이에 금융당국이 다음 달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금리를 상향하는 내용의 핀셋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최근 집값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수도권 대출 한도를 다른 지역보다 줄여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연합회장 및 19개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오는 9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시행하면서 은행의 수도권 주담대에 대해 스트레스 금리를 기존 0.75%포인트(p)에서 1.2%p로 높이기로 했다.
수도권에 대한 스트레스 금리를 상향할 경우 DSR 37%~40% 수준의 차주(은행권 주담대의 6.5%)에 한해 일부 대출한도의 축소 등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다만 최근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정금리 주담대의 경우 스트레스 금리의 일부분만 반영되기 때문에 실수요자 불편은 제한적일 거라는 설명이다.
1단계 스트레스 DSR을 시행할 때와 같이 시행 기간에 여유를 둬 실수요자 불편도 최소화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이달 31일까지 주택매매계약을 체결한 차주 등에 대해서는 수도권 지역이라도 종전 규정, 즉 1단계 스트레스 금리(0.38%)를 적용받는다.
또 9월부터 신규로 취급하는 모든 가계대출에 대해 예외 없이 내부 관리 용도로 DSR을 산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보금자리론·디딤돌 등 정책모기지, 중도금·이주비 대출, 전세대출 등에 대해서도 만기별, 지역별·차주 소득별 DSR을 산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가계 빚과 부동산값이 잡히지 않으면 추가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현재 DSR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 전세대출, 정책 주담대, 중도금·이주비 대출 등도 일부 범위에 넣어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주담대에 대한 위험가중치 상향 조정, 가계대출 부문에 대한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부과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담대의 위험 가중치를 높이면 은행들은 대출할 때마다 자본을 추가로 더 쌓아야 하는데, 이는 은행들의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부동산 시장 회복과 맞물려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가계대출 잔액은 1780조원으로 전분기 말보다 13조5000억 원 늘었다. 주담대 증가 규모가 확대되고 기타대출 역시 증가로 전환하면서 대출잔액 증가 폭이 확대됐다는 게 한국은행 분석이다.
이번 금융당국의 수도권 주담대 대상 스트레스 금리 상향은 결국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실행할 때 좀 더 보수적으로 하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대출 금리를 더 높이는 방식으로 대출 한도를 줄여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리인하 기대감에 공급부족 우려가 더해지면서 집값 상승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치솟는 서울·수도권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금 상황에 맞는 해결책으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함영진 우리은행부동산리서치랩장은 21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9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이후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와 10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연달아 진행될 확률이 높아 보여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이 집값을 크게 안정시키긴 제한적”이라면서 “다만 금리 인하시기 변동금리 차주의 무분별한 대출 운용을 제어하고 고정금리나 주기형 대출로 수요를 분산하는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함 랩장은 “금리가 내려간다고 해도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보긴 어렵고 과거 0.5% 초저기준금리 시기의 회귀가 쉽지 않다”면서 “중금리 시대를 받아들여야 하고 DSR제도 같이 근본적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의 대출을 권고하는 움직임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함 랩장은 또 “10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고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구매와 가격상승, 주담대 잔액이 1개월에 5조원씩 상승하는 모습을 볼 때, 시장의 금리인하에 기대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에 경종을 울릴 필요는 있어 보인다”면서 “상환 가능한 선에서 대출을 운용할 수 있도록 스트레스 DSR 시행의 로드맵을 유지하고 DSR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여하튼 공급에 좀 더 속도를 내겠다는 부분인데, 재개발/재건축이나 기존에 진행했던 3기 신도시를 빨리 진행하는 게 일단 필요할 것 같고, 택지개발 지정은 정부가 서두른다고 해서 바로 되는 게 아니니까 운영의 묘를 잘 살려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은 또 “빌라들의 경우 매입 임대 물량을 많이 늘리면 아파트에 비해 좀 더 빨리 공급될 수가 있어 부분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면서 “오피스텔의 경우 오피스텔 자체가 주택세에 포함된다는 인식이 많다보니 취득세도 그렇고 양도세를 계산할 때도 주택세에 포함이 된다. 이것을 기존 주택에도 풀어줄 필요는 있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전반적으로 오피스텔 분양 상황도 나아지고 사업자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한편 대출규제와 동시에 정책금융(출산가정, 신혼부부 등 저금리대출)이 실행되고 있으므로, 단순히 대출을 조여서 집값을 잡는다는 식의 접근은 부적절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돈을 빌리기가 더 어려워진단 의미니, 시장거래 자체에는 긍정적이지 않다. 다만 동시에 금융기관의 건전성 제고에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의 경험을 거치면서 지금은 규제가 아닌 공급으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으로, 사실상의 여야 합의가 된 상황”이라면서 “단순히 대출규제가 심화되니 그걸로 집값이 잡히느냐는 식의 접근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인위적으로 시장가격을 억누르는 효과 정도만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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