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 규제로 바이오연료인 지속가능 항공유(SAF)로 화석연료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항공 분야 탄소 감축을 목표로 국제 기준이 잇따라 상향되면서 각국 정부들이 SAF 상용화에 힘을 싣고 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3%가 항공 산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공 분야 탈탄소화를 위한 국제기구 목표는 지난 2022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발표한 국제항공 탄소 감축 장기목표에 규정되어 있다. 2050년까지 항공산업의 탄소 배출을 순 제로(net-zero)로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다.
SAF는 화석연료가 아닌 폐식용유 등 바이오 기반 원료로 생산한 친환경 항공유로, 기존 항공유 탄소배출량의 평균 80%까지 저감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항공산업분야 전문 연구기관 ATAG에 따르면 SAF의 도입이 없이 기존 항공유가 계속 사용된다면 2050년까지 항공 운행으로 약 1800메가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해외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항공사들에게 SAF 사용 비중을 높이는 정책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SAF 사용과 항공산업 탈탄소화를 위한 정책을 선도하는 지역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로 감축하는 목표(Fit for 55 in 2020 패키지)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 통과된 REFuelEU 항공 법안은 EU 내 항공연료를 공급하는 모든 업체와 항공사에 규정된 SAF 의무 혼합비율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내년부터 유럽연합에서 이륙하는 모든 비행기에 최소 2% 이상 혼용된 SAF 사용을 의무화하기로 했고, 싱가포르도 2026년부터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기에 대해 SAF를 섞어 쓰도록 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021년 SAF 생산 목표를 2030년까지 30억 갤런, 2050년까지는 350억 갤런으로 늘려 미국 항공유 사용을 100% 대체하는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전 세계 많은 기업들도 이미 SAF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핀란드의 석유정제기업 네스테는 핀란드, 네덜란드 및 싱가포르의 정유공장을 바이오디젤 생산 공장으로 전환했다. 글로벌 메이저 쉘은 M&A를 통해 대규모 SAF 생산 설비를 확보하고, 블록체인 기반 SAF 크레딧 플랫폼을 구축해서 SAF 생태계에 주요 지위를 선점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떨까.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30일 ‘SAF 확산 전략’을 발표하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SAF 사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로드맵에 따라 올해 SAF를 활용한 상용 운항을 시작으로 2027년부터 국내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SAF 혼합유(1% 내외) 사용이 의무화될 예정이다.
양해각서 체결에 참여하는 국적항공사는 대한항공, 아시아나, 제주항공, 진에어,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9개사다.
참여 정유사는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에너지스다. 이 외에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폐자원 기반 원료 업체인 대경오앤티에 지분을 투자하며 SAF 제조 원료 확보에 나서고 있다.
국토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SAF 사용 촉진과 친환경 허브공항 조성을 위해 SAF 사용 항공사에 대한 국제항공 운수권 배점 확대, 인천공항 SAF 항공편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정부는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R&D)·시설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투자 세액공제 확대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높은 SAF 생산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인센티브도 마련할 예정이다.
아울러 국내외 대·중견·중소기업, 석유공사 등이 K-컨소시엄을 구성해 단계별로 해외 원료 확보, 저장·유통 인프라 구축 등을 공동 추진하고, 기업 수요를 기반으로 바이오원료 수거·처리·정제시설, SAF 생산공장, 연구기관 등 SAF 핵심 인프라의 집적화도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정유업계는 SAF를 '기회의 시장'으로 보고 오는 2030년까지 친환경 연료 분야에 6조 원가량을 투입할 방침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1월 바이오 원료를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정유 공정에 투입했으며, 국제항공 분야에서 SAF 생산을 공식 인증하는 'ISCC 탄소 상쇄 및 감축제도'(CORSIA) 인증을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또 지난 7월 26일 올해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탄소 배출 규제에 따라 SAF가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지난달 국내 업계 중 가장 먼저 SAF 수출에 성공했다. 기존 정유 설비에 석유 기반 원료와 동식물성 바이오 원료를 함께 투입하는 '코프로세싱' 방식으로 SAF를 생산해 일본 트레이닝 회사 마루베니에 공급했다. 또 충남 대산 공장 내 일부 설비를 연 50만톤 규모의 HVO 생산설비로 전환하고 차세대 SAF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GS칼텍스도 SAF의 대량 생산을 위해 원료 확보를 위한 업무협약과 기술 검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9월 인천∼미국 로스앤젤레스(LA) 노선 대한항공 화물기에 SAF를 급유해 3개월간 시범 운항한 바 있다. 또 바이오연료의 원료 확보를 위해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손잡고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정제사업을 진행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콤플렉스(울산CLX)에 SAF 생산 설비를 조성 중이다. 한화토탈에너지스도 지난 해 한국석유관리원,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대한석유협회, 한국항공협회와 함께 ‘SAF 실증연구 수행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상용화 기반 마련 연구에 동참해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국내 정유사가 직접 제조한 SAF를 여객기 상용 노선에 적용하며 탈탄소 행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산 SAF를 처음 적용하는 대한항공 상용 노선은 인천을 출발해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KE719편이다. 첫 급유 시 국산 SAF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석유관리원의 품질 검증 절차를 시행했다. 대한항공은 이날부터 2025년 7월까지 1년 동안 주 1회 KE719편 전체 항공유의 1%를 SAF로 채울 예정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해당 노선에 혼합하는 국산 SAF는 에쓰오일과 SK에너지가 생산한다”면서 “전반 6개월은 에쓰오일, 후반 6개월은 SK에너지가 생산한 SAF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에쓰오일은 폐식용유를, SK에너지는 폐식용유와 동물성 유지를 친환경 정제 원료로 활용했다. 양사가 만든 SAF 모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국제항공 탄소 상쇄 및 감축 제도(CORSIA) 인증을 받았다. 이번 SAF 급유 상용 운항을 계기로 ICAO 홈페이지(누리집)에 우리나라는 전 세계 20번째 SAF 급유 국가로 등재될 예정이다.
한편, 대한항공은 국산 SAF 적용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SAF 상용 운항 취항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오종훈 SK에너지 사장, 안와르 에이 알-히즈아지 에쓰오일 대표이사 등 관계 부처 주요 인사 및 CEO가 참석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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