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제표준기구(ISO)에서 ‘게임·e스포츠 용어 표준화’ 제안서를 승인받으며, 국제 e스포츠 표준화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YTN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제출한 제안서는 올해 5월 국제표준기구 투표를 거쳐 공식 승인을 받았다. 이 제안서에는 e스포츠의 정의부터 경기 규칙, 장비 규격까지 포함돼 있어, 앞으로 국제 대회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자부하던 e스포츠 종주국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4일 문체위 국정감사에서 중국이 국제 e스포츠 표준화를 추진하는 동안, 우리 정부가 방관적 태도를 취해왔다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중국이 ISO 기술위원회에 제안서를 제출한 후 의장직까지 차지하며 표준화 논의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고 지적하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전부터 해당 이슈에 대해 지적받아 왔으나,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 용역이나 전문가 등록조차 손을 놓고 있어 방만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 의원은 이에 대한 문체부의 대응 의지가 전무하고, 방관을 넘어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표준화는 경기 규칙과 선수 관리, 대회 운영 방식 등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다”라며, 국제 대회에 중국 기준이 적용될 경우 한국 e스포츠가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이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이 e스포츠 산업에 대규모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e스포츠 종주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교수는 24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e스포츠 분야를 개척하며 '퍼스트 무버'로 앞서갔을지 몰라도, 그 과실은 결국 다른 나라들이 따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의 지위를 자부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지원 기관의 부재와 부족한 예산이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e스포츠와 게임 산업을 총괄할 전문 기관이 시급히 필요하며, 현재의 미흡한 대응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경쟁력이 계속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게임과 e스포츠를 총괄하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며, 정부와 민간, 학계가 협력해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세계 각국은 e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고 종주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계획의 일환으로 38억 달러를 투자해 e스포츠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을 ‘비디오 게임과 함께 자란 첫 세대’라고 칭할 만큼 게임에 관심이 많은 빈 살만 왕세자는 게임 분야에 대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는 올해 총상금 6,000만 달러(약 828억 원) 규모의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했으며, 2025년부터는 IOC와 협력해 e스포츠 올림픽을 개최해 향후 12년간 정기적인 대회를 통해 글로벌 e스포츠 중심지로 자리 잡겠다는 계획이다.
4억명 넘는 게이머 인구를 지닌 인도의 성장세도 무섭다. 2023년 인도의 e스포츠 시장은 4,000만 달러로 평가되었으며, 2025년까지 1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 2022년 e스포츠를 공식적인 스포츠 중 하나로 인정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4월 게임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청소년들에게 무궁무진한 진로를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e스포츠 산업에 규제를 가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그 대신 체계적이고 합법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제 이를 국가적 과제에 맞게 조정해야 할 때다."라고 국가적인 육성을 약속했다.
유럽의 경우 EU 의회는 2022년 e스포츠와 비디오 게임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장기적인 유럽 e스포츠 전략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EU는 창의성과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한 산업 성장을 도모하고 있으며, e스포츠와 비디오 게임이 교육 및 평생 학습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해 EU는 공정한 소비자 보호와 성별 평등 촉진을 위한 e스포츠 헌장 제정을 제안하며, 유럽의 가치를 반영한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시아 마다니 예산 2025를 통해 20억 원 규모의 예산을 e스포츠 산업에 투입하고, 국가 e스포츠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며, 태국 정부 역시 정부 차원에서 e스포츠를 육성하는 등 세계 각국의 e스포츠 투자의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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