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미성년자의 소셜 미디어(SNS) 사용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미성년자 온라인 보호법이 공표된 것을 시작으로 법적 규제의 움직임이 여러 국가에서 강화되고 있다.
영국 기술 장관 피터 카일(Peter Kyle)은 최근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 금지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며, 호주와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이미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되거나 논의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되며 청소년 SNS 이용 규제에 대한 찬반 논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영국은 ‘온라인 안전법(Online Safety Act, OSA)’ 시행을 앞두고 청소년의 안전한 온라인 환경 조성을 위한 강력한 규제를 논의 중이다. 피터 카일 장관은 20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을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라며, 16세 미만 청소년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SNS 플랫폼에 연령 인증과 안전한 서비스 설계를 의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호주에서도 호주 통신부가 21일 의회에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지난 7일 앤서니 앨버지니 호주 총리가 "소셜미디어는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며, 이를 멈출 규제 법안을 이달 말까지 도입할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후속 조치다.
해당 법안은 틱톡, 인스타그램, X 등 주요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16세 미만 사용자의 계정을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위반 시 최대 5천만 호주달러(약 325억 원)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호주 정부는 이를 통해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고 유해 콘텐츠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려 한다고 밝혔다.
다만 여러 방면에서 우려도 나온다. 청소년들이 VPN 등 우회 수단을 통해 규제를 피할 가능성이 있으며, 청소년의 디지털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선 해당 법안은 소셜 미디어에만 적용되며, 메시징 서비스나 온라인 게임 사이트, 그리고 계정 없이 접속 가능한 유튜브 등의 사이트는 법안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BBC는 이에 대해 지적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규제 기관이 무엇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라고 꼬집었다.
호주의 이익단체 디지털 인더스트리 그룹은 이러한 법안이 아이들을 "인터넷의 위험하고 규제되지 않는 부분"으로 몰아넣을 수 있으며, 전문가들 역시 이를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역시 해당 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8일 성명을 통해 "호주 정부의 온라인 안전 강화 노력은 환영하지만, 소셜 미디어 기업에 책임을 묻는 구조적 해결책이 아닌, 단순한 접근 제한 방식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 호주 CEO인 매트 틴클러(Mat Tinkler)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안전을 플랫폼 설계 단계에서부터 통합하도록 강제하는 구조적 변화"라며, "안전을 사후적으로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초기부터 안전이 내재된 플랫폼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틴클러는 또한 "청소년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반영해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금지 조치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러한 금지 조치 대신,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강화, 플랫폼 안전 기능 개선, 법적 보호 조항 강화 등을 포함한 다각적인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청소년 SNS 이용 제한에 대한 논의는 국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16세 미만의 청소년의 SNS 일별 이용 한도를 설정하고 중독을 유도하는 알고리즘 허용 여부에 대해 친권자의 확인을 받도록 하는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 지난 7월에는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중독을 방지하도록 하는 ‘청소년 필터버블 방지법'을,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셜 미디어 사업자가 14세 미만 아동의 회원가입을 거부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을 포함한 다수의 청소년 권리 단체와 교육 단체들이 "청소년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SNS 셧다운제', 단호히 반대한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관련 법안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성명서에서 이들은 청소년의 SNS 사용을 연령 기준으로 제한하고 부모(친권자)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규제가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통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법안을 2011년에 시행된 '게임 셧다운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통제 중심의 접근이라고 비판하며, "규제의 초점은 청소년의 행위가 아니라 이를 설계한 시스템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성명서는 청소년 당사자가 배제된 정책 논의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 "우리 아이 SNS 안전지대 3법"에 청소년 당사자가 패널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청소년을 정책의 주체가 아닌 대상자로만 여기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SNS 사용 규제가 단순히 청소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소년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공동 성명은 SNS 플랫폼의 설계와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을 불문하고 숏폼 콘텐츠나 추천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중독적 사용 패턴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며, 특정 연령대만을 대상으로 한 규제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규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또한, 청소년이 짧은 시간 안에 재미를 얻으려는 행동은 학업 경쟁과 입시 부담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청소년 문제를 단순히 중독이나 규제의 대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총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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