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신한금융이 9개 자회사 대표를 일괄 교체하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선 가운데, 은행·보험 등 핵심 자회사 대표는 연임시키기로 결정했다.
앞서 신한금융지주 자회사최고경영진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자경위)는 지난 5일 회의를 열고 곧 임기가 만료되는 13개 자회사 중 9개 자회사 대표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핵심 자회사 중 신한투자증권과 신한카드는 인사교체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김상태 대표가 내년 말까지 임기가 남아있었지만 최근 발생한 파생상품 관련 사고로 사임을 결정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8월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업무 수행 과정에서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장내 선물 매매로 약 1300억원의 손실을 낸 바 있다.
김 대표의 후임이 될 신임 신한투자증권 대표로는 이상훈 신한투자증권 부사장이 내정됐다. 내부통제 문제로 대표가 교체된 만큼 이 내정자는 무엇보다 내부통제 강화 및 리스크 관리의 역할이 요청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이 부사장은 현재 파생상품 사고 관련 후속조치를 위한 ‘위기관리·정상화 TF’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조직을 쇄신하는데 가장 적임자로 판단돼 신규 선임됐다”며 “그동안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 상황인 만큼 신임 사장에게는 전사리스크 관리 컨트롤타워로서 역할 수행이 더욱 강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카드의 경우 문동권 대표의 연임이 점쳐졌으나 역시 대표가 교체됐다. 지난해 1월부터 신한카드의 키를 잡게 된 문 대표는 지난해 카드업황 악화에도 전년 대비 3.5% 감소한 6219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경쟁사 대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3분기 누적 기준 5527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지난해 동기 대비 17.8% 성장해 실적 ‘방어’에 이어 ‘반등’에도 성공했다.
게다가 금융지주 계열사 대표가 일반적으로 ‘2+1’의 임기를 보장받는 관행까지 감안하면 문 대표가 1년 더 임기를 보장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업계 2위 삼성카드와의 격차가 점차 축소되고 있는 만큼, 신한금융도 ‘안정’보다 ‘변화’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신한카드와 삼성카드의 순이익 격차는 지난 2021년 1251억원에서 지난해 125억원으로 크게 좁혀졌다. 올해 양사의 순익 격차는 3분기 기준 약 200억원으로 확대됐으나, 여전히 과거에 비해 1·2위가 명확히 나뉜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문 대표의 후임으로 내정된 인물은 박창훈 신한카드 본부장이다. 핵심 자회사 CEO(최고경영자)로 부사장도 거치지 않은 본부장을 추천한 만큼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현재 신한카드는 카드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2위권 사업자와 격차가 축소되고 있고, 업권을 넘나드는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차별적인 성장 모멘텀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라며 “CEO 교체를 통해 과감한 조직 내부 체질 개선을 이끌고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방점을 뒀다”고 이번 인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 밖에도 ▲신한캐피탈 전필환(신한은행 부행장) ▲제주은행 이희수(신한저축은행 부행장) ▲신한저축은행 채수웅(신한은행 본부장) ▲신한DS 민복기(신한은행 본부장) ▲신한펀드파트너스 김정남(신한은행 본부장) ▲신한리츠운용 임현우(신한은행 본부장) ▲신한벤처투자 박선배(우리파트너스 전무) 등이 신규 선임됐다.
박창훈 신한카드 대표 내정자 외에도 다수의 본부장급 인사를 CEO로 추천하는 파격 인사로 인적 쇄신을 통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반면, 신한은행과 신한라이프, 신한EZ손해보험 등 보험·은행 대표의 경우 기존 대표의 연임이 결정됐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의 경우 지난해 2월 전임 행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급하게 물러나면서 대표 자리에 오른 경우다. 갑작스러운 취임이었지만 지난해 3조67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3조 클럽’ 자리를 지켰고, 올해는 3분기 누적 기준 2조6179억원의 순이익으로 지난해 1위 하나은행과 라이벌 국민은행을 제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았다.
게다가 올해 들어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 경쟁사가 각종 대형 금융사고로 곤욕을 치렀던 반면, 신한은행에서는 별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도 정 행장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이유 중 하나다. 최근 은행권 내부통제 부실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무사고 행장’이라는 타이틀은 ‘실적성장’이나 ‘리딩뱅크’같은 수사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 행장은 이례적으로 1년이 아닌 2년의 임기를 추가로 보장받게 됐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견조한 자산성장과 비이자 이익 증대 및 글로벌 성장 등 우수한 경영성과를 시현했으며 안정적인 건전성 관리와 미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다양한 혁신을 주도하며 조직을 쇄신했다”며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는 등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점이 높게 평가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와 강병관 신한EZ손해보험 대표 또한 1년의 임기를 더 보장받게 됐다. 이 대표의 경우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조직 통합 및 안정화를 이끌어온 인물로, 지난해 대표 취임 이후 꾸준히 실적을 성장시켜왔다. 실제 신한카드는 이 대표 취임 첫해인 지난해 4724억원(전년 대비 +5.1%)의 순이익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3분기만에 4671억원(+9.2%)의 순이익을 거두며 지난해 연간 실적을 이미 뛰어넘었다.
신한라이프의 올해 3분기 순이익은 전체 생보사 중 4위에 해당하며, 그룹 실적 기여도 또한 신한카드(5527억원, 13%)에 이어 두 번째(11%)에 해당한다. 증권의 부진을 생명보험이 메우며 그룹 전체의 실적 성장을 견인한 공로가 이 대표의 연임을 통해 인정받은 셈이다.
신한EZ손보의 경우 실적은 아직 부진하지만, 악화하는 업황 속에서 성장 기반을 마련 중인 상황을 고려해 연임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신한EZ손보는 출범 첫해인 지난 2022년 150억원의 손실을 냈으며, 올해도 3분기 누적 기준 140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손보사 전체가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계속된 실적 부진을 강 대표의 경영역량 탓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어려운 경영환경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강 대표의) 재선임을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이어 “자회사 CEO 교체 폭을 대폭 확대하여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고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포착,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라며 “그룹의 경영리더로서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시장 불확실성에 효율적, 안정적으로 대응하고, 그룹의 한 단계 도약, 새로운 성장 기회 창출을 위한 강한 추진력, 실행력을 발휘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자경위에서 추천된 대표이사 후보는 각 자회사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자격요건 및 적합성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을 거쳐 각 사 이사회 및 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본부장급을 CEO로 신규 추천하는 등 파격적인 인사 교체에 나선 신한금융이 내년 금융그룹간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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