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이코리아] 4대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밸류업(기업가치제고) 계획 이행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고환율과 금리인하, 정치적 불안정 등 각종 변수로 인해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밸류업 이행 여부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주요 투자자에게 IR 서한을 발송하고, 지난해 그룹 주요 성과와 함께 새해 밸류업 추진 계획을 설명했다.
임 회장은 서한에서 “2024년은 우리금융그룹이 전환점을 맞이한 중요한 해였다”며, “특히, 은행지주사 중 처음으로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고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되며 우리금융의 성장 잠재력을 시장에서 높이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이어 “우리금융을 비롯한 밸류업 공시 기업들의 강력한 이행 의지 등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밸류업 정책은 변함없이 일관되게 추진될 것”이라며 “2025년에는 해외 투자자들을 직접 찾아뵙고 우리금융의 비전과 전략을 설명하며,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금융권의 화두였던 ‘밸류업’을 새해 들어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선 것은 임 회장뿐만이 아니다. 양종희 KB금융 회장도 지난 6일 해외투자자를 대상으로 친필 서한을 보내 밸류업 계획 이행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양 회장은 서한에서 “최근 대한민국을 둘러싼 여러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금리·환율 등의 변동성 확대로 영업환경과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을 깊이 공감하며 현재의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지난 10월 공시를 통해 주주들께 약속드린 그룹의 지속가능한 밸류업 방안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해외투자자를 직접 만나 밸류업 계획을 설명하고 투자 확대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17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베인캐피탈’의 존 코노턴 글로벌 CEO와 데이비드 그로스 공동대표, 이정우 한국대표를 직접 만나 국내 투자 확대를 위한 전방위적 소통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함 회장은 한국 경제의 굳건한 펀더멘탈과 성장 가능성을 강조하며 “하나금융은 최근 불확실성이 확대된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고, 기업이 경제활동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 회장은 “베인캐피탈과의 우호적 관계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서는 협업 사업을 한층 더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신규 비즈니스의 기회를 창출할 계획”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서 양사의 시너지가 다방면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그룹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도 지난해 홍콩에서 해외투자자들을 만나 밸류업 계획 이행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진 회장은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진행된 ‘인베스트 K-파이낸스(Invest K-Finance)’ 투자설명회에서 해외투자자들에게 한국 자본시장 활성화 전략 및 신한금융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이행 현황 등을 설명했다.
진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가치 제고의 가장 큰 핵심은 주주, 시장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켜 나가는 것”이라며, “신한금융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성실한 이행과 함께 대한민국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선도하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일제히 밸류업 계획 이행 의지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최근 불확실한 금융시장 상황으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4대 금융지주사는 지난해 우리금융(7월)을 시작으로 신한(7월), KB(10월), 하나(10월) 등 차례로 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바 있다. 4대 금융 밸류업 계획은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보통주자본비율(CET1) 13%를 목표로 하고, 이를 초과하는 잉여자본을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해 총주주환원율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최근 들어 금융시장이 상당히 불안정해지면서 밸류업 계획 이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달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 2기 출범까지 겹치면서 확대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금융시장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 기조가 계속되면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하고 주주환원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상승하면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해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하락하게 된다.
지난해 발표한 금융권 밸류업 계획 대부분에 CET1과 주주환원율을 연동하는 내용이 포함된 만큼, CET1 비율이 하락하면 주주환원율 또한 투자자들의 기대를 밑돌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달러·원 환율이 10원 상승할 때 CET1 비율은 2~3bp(1bp=0.01%)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분기에만 환율이 무려 150원가량 상승한 만큼, 최악의 경우 CET1 비율이 목표치인 13%를 하회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경기침체로 인한 연체율 상승, 금리인하 기조에 따른 이자마진 축소 및 수익성 악화 등도 올해 금융그룹 실적 저하 및 주주환원 축소를 우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국내외 정치경제적 변수로 인해 밸류업 계획 이행 여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금융지주 회장들이 선제적으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서게 된 셈이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4일 보고서를 통해 “정치 불확실성이 불거진 12월 3일 이후 은행주는 코스피 대비 10.1% 초과 하락했다. 단기간에 급등한 환율이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점진적 주주환원정책 확대라는 방향성에 대한 의심은 없으나 보통주자본비율 하락과 맞물려 개선 속도가 더뎌질 가능성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은 연구원은 이어 “본격적인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선 밸류업 정책의 정상적인 이행 확인이 필요하다”라며 “단기적으로 환율, 금리, 정치 상황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가 흐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금융지주 주주환원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반론 나온다. 실제 4대 금융 대부분은 밸류업 계획에서 제시한 CET1 비율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상태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보면 우리금융(11.96%)을 제외한 3개 금융지주사 모두 13% 이상의 CET1 비율을 기록했다. 특히, KB금융이 13.85%로 4대 금융 중 가장 높았으며, 그 뒤는 하나금융(13.17%), 신한금융(13.13%)의 순이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20일 보고서에서 “4분기 실적이 기대치를 상회하고, CET1 비율도 주주환원 확대에 필요한 자본 수준을 상회할 경우 은행들이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를 확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4분기 어닝시즌을 기점으로 은행주 밸류업 모멘텀은 다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이어 “모든 은행들이 배당선진화 방안을 시행하면서 배당투자 시기가 기존 11~12월에서 1~2월로 늦춰져 요즈음이 배당투자 수요 또한 커질 수 있는 시기”라며 “물론 향후 정치적 변화에 따른 규제 확대 가능성 우려 등은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추가적으로 안정화될 경우 자본비율과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 있는 점도 긍정적일 수 있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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