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노후 준비 부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지만, 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할 퇴직연금의 역할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내집 마련을 위해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연금 수령을 유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퇴직연금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사람은 4만9811명, 인출 금액은 1조742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보다 9~10%가량 줄어든 것이다.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례는 지난 2019년(7만3천명, 2.8조원) 이후 3년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그 규모가 작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주거 비용 문제로 퇴직연금을 빼 쓰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 중 비중이 가장 높았던 것은 주택 구입으로 인원 기준 46.6%(금액 기준 55.6%)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주거 임차로 인원 기준 31.6%(금액 기준 29.2%)를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30·40대가 각각 42.4%, 32.2%(금액 기준 31.0%, 36.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을 쌓아나가야 할 3040이 오히려 주거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연금을 깨고 있다는 것.
이는 부실한 국내 노후 대비 현황을 고려할 때 무시하기 어려운 문제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이미 가구주가 은퇴한 가구 중 생활비가 “여유 있다”라고 답한 가구는 10.5%에 불과한 반면, “부족하다”라고 답한 가구는 58.4%였다.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의 노후 대비도 부실하다. 해당 조사에서 가구주가 아직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 노후 대비가 “잘 되어 있다”라고 답한 가구는 겨우 7.9%에 불과했다. “잘 되어 있지 않다”라고 답한 가구는 53.8%였으며, “보통이다”는 38.2%였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에서도 19세 이상 성인 중 노후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30.3%에 달했다.
은퇴 가구 10개 중 9개의 생활비가 부족하고, 은퇴 전 가구의 절반이 노후 준비가 부실한 상황에서 주거비용 해결을 위해 퇴직연금을 깨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주택 관련 중도인출이 퇴직소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30·40은 각각 근로기간 8.1년, 12.1년에 해당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인출했다. 이로 인해 이들이 상실한 퇴직연금 적립기간은 각각 28.8%, 54.7%로 추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돼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을 막고 노후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는 노력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실제 해외 주요국에서는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수령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중도인출에 대해 강한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택구입 ▲고등교육비 ▲고액의료비 등 특정 사유를 제외하면 59.5세 이전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경우 한계세율 이외에도 10%의 조기인출 가산세를 부과한다.
영국 또한 건강 문제를 제외한 이유로 55세 이전에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하면 한계세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호주도 60세 이전 중도인출 시 연금소득이 일정 금액 이상이면 한계세율이나 17% 중 낮은 세율로 과세한다. 덴마크는 60세 이전 퇴직연금 중도인출에 대한 세율이 60%나 적용된다.
오병국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022년 발표한 ‘주요국의 퇴직연금 연금 수령 유인 관련 세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현행 퇴직연금 관련 세제는 연금 수령 유인이 미흡해 일시금 수령 선택이 여전히 선호되고 있다”라며 연금소득에 대한 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중도인출 및 해지에 대한 페널티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또한 지난해 10월 열린 ‘퇴직연금 어디로 가야 하나’ 정책토론회에서 “퇴직연금이 원칙적으로 중도인출, 이직 후 해지되지 못하도록 세제개편, 제도 강제화 등이 요구된다”라며 “퇴직연금 수급 시 자동으로 연금 형태로 수령되도록 ‘자동연금수령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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