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이어지는 3%대 물가가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값’이라는 과일 값 등 먹거리 체감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인데다 최근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까지 오름세를 보이는 여파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2024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로 낮아졌다가 2월에 3.1%로 올라선 뒤 2개월째 3%대를 유지했다. 국제유가 불안에 사과, 배 등 과일값이 급등세를 이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사과가 88% 넘게 상승했고, 배와 귤 등도 크게 뛰었다. 유가 불안에 석유류도 1.2% 상승했다. 석유류가 오른 것은 작년 1월 이후 14개월 만이다.
공미숙 심의관은 이날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석유류 가격이 어떻게 될지가 (향후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농축수산물 물가는 날씨나 이런 부분이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달러화와 원자재의 동반 강세는 우리나라와 같은 에너지 순수입국 경제의 물가와 내수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원유를 더 많은 원화를 주고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도입 단가가 이중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동지역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국제 유가가 들썩이자, 정부는 이달 말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6월말까지 2개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휘발유 유류세 인하율을 37%까지 내렸던 정부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인하율을 25%로 조정해 왔다. 이번 연장 조치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인하 종료 시한을 연장하게 됐다.
우지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번 중동 리스크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상승 및 수급 불안은 향후 공급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글로벌 경기 경착륙 가능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동 전쟁 확전 가능성은 낮으나, 관련 리스크가 잔존하는 가운데, 계절적 요인 등이 맞물리며 향후 유가는 당분간 타이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우 연구원은 또 “현재 미국의 원유 재고 수준은 최근 5년 평균 대비 소폭 하회하고 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22년보다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라면서 “다만, 단기적 원유 생산 능력이 제한적인 가운데, 향후 에너지 수요가 높아지는 미국 드라이빙 시즌(5~8월)을 앞두고 재고 소진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불안 요인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물가와 관련해 지난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터치하는 등 치솟는 환율도 부담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긴 건 이번이 4번째다. 지금까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건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2년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까지 모두 세 차례였다.
다만 외환당국의 이틀 연속 구두개입으로 일단 급등세는 잠재웠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 12분 현재 전장 대비 5.80원 내린 1381원에 거래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일 미국 경제매체 CNBC방송과 인터뷰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준비가 돼 있으며 충분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1월 올 상반기 중 2%대 물가 안정을 목표로 11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달에도 농축산물 할인지원율을 20%에서 30%로 상향하고, 정부가 직수입하는 과일 물량도 상반기에 5만톤(t)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국제유가 상승과 고환율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한편, 시장에서는 올 여름까지 3%대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유가와 환율 상승으로 투입가격이 오를 것을 반영해 3분기 물가상승률이 좀 더 오르고 4분기 들어서야 2%대 후반에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17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기준 3월의 평균 국제유가는 80.4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9.6% 올랐다. (같은 기간)환율은 1332원으로 2.0% 상승해 이미 원유의 원화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함께 작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지난해 2분기 유가 기저가 낮았던 만큼, 에너지 수입물가의 전년동월비 상승률은 3월에 이미 플러스(+) 영역으로 들어섰는데, 2분기에도 그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물가와 내수에 부담이지만 순대외금융자산과 외환보유액, 환헤지 등으로 국내 경제 위기 요인은 아니라는 평가다.
권 연구원은 “정부는 GDP 대비 24.5%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어, 외환시장 변동성이 경제의 건전성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 역시 이미 3년 이상 추세적으로 오름세인 환율에 헤지를 늘려놓은 만큼, 손실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가 부담에 대내 수요가 위축되고 환헤지 비용이 점차 오르는 점은 내수 기반의 기업 수익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나, 건전성 리스크를 걱정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 수입물가가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올 4분기 즈음에야 물가가 2%대에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데이터를 살펴보면, 에너지 수입물가 변동 1~2개월 후 소비자 물가에 그 영향이 가장 강하게 파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유가의 추가 상승폭이 제한적이라고 하더라도, 8월 무렵까지 전년동월비 3%대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물가상승률은 7월 정점을 기록한 후 3분기 말부터 2%대로 내려가, 4분기가 되어야 2%대 후반에 안착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연내 인하도 1회에 그칠 전망”이라고 밝혔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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