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순위 상승을 반기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지표의 신뢰성을 지적하며 순위 변동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IMD가 지난 18일 발표한 2024년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67개국 중 20위를 차지하며 순위가 지난해보다 8계단 상승했다. 이는 한국이 지난 1997년 평가 대상에 포함된 이후 가장 높은 순위로,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 및 인구 5천만 이상 국가) 중에는 미국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 IMD 국가경쟁력 평가 20위, 어떤 의미일까?
IMD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가 상승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해당 평가가 한국의 실질적인 국가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평가 중 상당 부분이 설문조사를 통해 이뤄지는 데다, IMD가 바라보는 ‘국가경쟁력’의 의미도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IMD는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사립 경영대학원으로 지난 1989년부터 매년 ‘세계경쟁력연감’(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을 발간하며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쟁력 순위를 산정·발표하고 있다.
IMD는 주요국의 국가경쟁력을 ▲경제운영성과 ▲정부행정효율 ▲기업경영효율 ▲발전인프라 등 4개 분야로 나눠 평가한다. 각 분야를 다시 5개 부문으로 나뉘며, 총 336개 세부항목에 대한 통계자료 및 기업인 설문조사를 집계한 뒤 가중치를 부여해 최종 순위를 산출한다.
평가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IMD가 바라보는 ‘국가경쟁력’은 정부가 기업에게 얼마나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실제 IMD는 국가경젱력을 “기업의 경쟁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제반 여건들을 창출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국가경쟁력’이나 ‘국력’에 비해 좁은 의미의 개념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조병구 연구위원은 지난 2006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대해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한 국가의 전반적인 능력인 국력보다는 협의의 개념이며,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과 관련된 여건들이 주요 평가 대상”이라며 “IMD가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는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입지를 선택함에 있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정부정책, 기업경영 등에도 유용한 참고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IMD 국가경쟁력은 어느 나라가 기업이 수익을 내기 더 좋은 나라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이번 평가의 세부 항목 중 한국의 순위가 가장 낮았던 것은 ‘정부효율성’으로 지난해 38위에서 올해 39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정부효율성 관련 세부 평가항목 5개 중 재정(40→38위), 제도 여건(33→30위), 기업 여건(53→47위), 사회 여건(33→29위) 등 4개 부문 순위가 모두 올랐지만 조세정책이 26위에서 34위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조세정책 부문은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의 조세부담을 측정해 평가하는데, 총조세는 32위에서 38위, 소득세는 35위에서 41위, 법인세가 48위에서 58위로 떨어졌다. IMD 국가경쟁력 평가가 기업을 위한 것인 만큼, 세율이 낮아질수록 평가가 높아진다. 극단적으로 세율이 0%라면 조세정책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낮은 세부담이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한 환경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강한 국력’이나 ‘효율적인 정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스웨덴(6위)이나 노르웨이(10위) 등 북유럽 국가들은 20~22%의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어 이번 평가에서는 조세정책 부문에서 각각 56위, 52위의 낮은 순위에 머물렀지만 전체 순위에서는 한국을 앞선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큰 G7 국가 중 미국(12위)과 캐나다(19위)를 제외한 독일(24위), 영국(28위) 등 5개 국가는 한국보다 오히려 순위가 낮았다. 1~5위는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싱가포르, 스위스, 덴마크, 아일랜드, 홍콩이 차지했다. IMD 평가를 통해 국가 간 경쟁력 비교를 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평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지표의 신뢰성에 대해 반복해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고길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2년 발표한 ‘국가경쟁력지수에 대한 비판적 검토’ 논문에서 IMD 및 WEF(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대해 “ 설문조사를 통한 연성자료의 활용도가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표본설계의 타당성 및 대표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평가에서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 문항은 92개로 전체 세부항목(336개)의 27%를 차지하는데, 이 또한 설문조사 비중이 너무 크다는 비판을 반영해 줄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순위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업효율성’ 부문의 경우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에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려면 기업 친화성을 넘어선 광범위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영출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008년 발표한 ‘국가경쟁력지수의 타당성과 신뢰성 분석’ 논문에서 “평가항목들을 기업경쟁력 위주에서 거버넌스 능력의 측정과 같은 국가전반의 능력측정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사회자본수준과 같은 지표들이 포함되어 거버넌스 능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기재부는 이번 IMD 평가와 관련해 “앞으로 정부는 평가 결과를 참조하여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정책 기조에 따라 기업효율성 제고를 더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 세제 합리화, 기회균등 등 정부 효율성 제고,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및 수지개선 등 경제성과 개선, 인프라 구축 등 종합적인 국가경쟁력 강화에 더욱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가 3년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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