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은 UN이 제정한 ‘세계 인구의 날’이다. 우리나라 역시 2011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개정하여 11일을 ‘인구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UN이 ‘세계인구의 날’을 제정한 이유는 인구증가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인구의 날’ 제정 배경은 그 반대다. 인구구조 불균형과 관련한 국민의 인식 제고를 위해서다. 인구 소멸로 인한 산업경쟁력 약화가 전망되는 가운데 이민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5일 내년도 합계출산율이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2.1명을 회복하더라도 생산가능인구는 ‘2025년 3591만 명 → 2040년 2910만 명’으로 약 81%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또한, 정부가 목표한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을 회복하더라도 총인구는 2025년 5175만 명에서 2070년 3771만 명으로 72.9% 수준으로 감소하고, 생산가능인구는 2025년 3591만 명에서 2070년 1791만 명으로 49.9%로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위의 자료를 근거로 “산업현장의 인력부족 대비해 외국인력정책에서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기적 노동 부족을 메우기 위한 이민정책이 아니라 ‘중장기적 이민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지난 6월 ‘2024 서울신문 인구포럼’에서 “우리나라 비자 제도는 20년 전에 만들어져서 과거에 머물러 있다. 20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라며 “노동 수요에 맞춘 비자 인력뿐만 아니라 결혼과 유학 등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민자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매년 비자 인력만 늘릴 게 아니라 이미 들어와 있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자기계발 기회를 주고 취업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악한 이민자의 소득과 근로 환경, 주거 환경도 함께 개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미등록 이주민은 41만5,230명으로, 체류 중인 전체 외국인 243만2,888명의 17.1%에 달한다. 외국인 6명 중 1명은 미등록 이주민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이주민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경직된 이주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한다. 취업비자 중 비중이 가장 큰 고용허가제(E-9) 비자의 경우, 비전문 외국인력 고용을 위해 마련되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는 최초 3년간 3회, 다시 고용된 1년 10개월간 단 2회만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 허용 범위도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자가 부당한 처우를 ‘스스로 입증’하는 경우만으로 제한돼 있다.
제도가 이렇다 보니 언어가 서투른 이주민이 부당한 상황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일어난다. 인권운동가들은 “언어가 미숙해 임금체불 같은 일을 장기간 겪어도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라며 “현행 제도가 오히려 미등록 체류자를 양산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단기적으로 노동력만 활용하는 식의 정책이 아닌 이주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이민정책을 바꾸고 숙련 기술을 갖춘 외국 인력을 유치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심각한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되면서 「거주허가 및 정주법(이민법)」을 제정해 정주형 이민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전문인력인정법」, 「기술이민법」 등 지속적인 숙련기술인력·정주 중심의 이민정책을 펼쳐 인구충격의 속도를 늦췄고 생산인구 반등 효과를 거뒀다.
독일은 취업비자 발급대상을 대졸자에서 직업교육수료자·전문경력자까지 확대하고, 비EU 출신 미숙련 기술인력에게 직업교육을 제공, 이주민들의 독일사회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독일어 교육과 실업수당 제공 등의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이민정책은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 독일 연방정부 통계에 따르면 자국민 중 18세~65세 비율은 61.2%인 반면, 이주민의 경우 비율이 83.6%에 달해 사회 전체를 젊게 만들고 있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자 고용 연장, 여성 노동력, 비정규직 등 국내 노동인구 활용을 중심으로 대응했다. 외국 인력은 비숙련 중심의 산업연수생(기능실습제)과 유학생 등을 활용했다. 그 결과 생산가능인구는 지속해서 감소했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2000년 67.8%에서 2022년 58.5%로 9.3%포인트 줄었다.
반면 독일은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2000년 68.0%에서 2022년 63.6%로 4.4%포인트만 감소했다. 보고서는 독일이 2000년대 초반 정주형 이민 정책을 담은 ‘거주허가 및 정주법’(이민법)을 제정·실시한 영향으로 봤다. 독일은 2010년대 들어서도 전문인력인정법, 기술이민법 등 숙련 기술인력·정주 중심의 이민 정책을 펼쳐 생산가능인구 반등 효과를 거뒀다.
이에 보고서는 한국의 정책 방향이 독일과 같은 포용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유럽연합(EU)블루카드’와 유사한 ‘K-블루카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U블루카드는 숙련 기술인력에게 발급하는 취업비자로, EU 회원국 내에서 자유롭게 취업 활동이 가능하다. 또 가족 동반뿐 아니라 동반 가족도 취업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블루카드 비자로 33개월 근무한 이후에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보고서는 또한 정해진 기간 지정된 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를 직장 이동이 가능한 ‘노동허가제’로 단계적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주민 노동자와 가족들이 한국 사회에 통합·융화될 수 있도록 정주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주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선 우리 사회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의 2021년 인식조사를 보면, 독일은 국민의 71%가 이주 배경자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한국 59%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은 이주 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우리나라 다문화정책의 큰 틀은 이주민의 적응과 변화만을 요구하는 ‘동화주의’였다”라며 “그렇지만 앞으로는 외국인 이주민과 내국인간 서로 도움을 주며 좀 더 잘 살아보자는 상리공생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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