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금융분쟁 처리 제도로는 신속한 피해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해외 금융분쟁 해결제도의 특징 및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등 수익구조가 복잡하고 손실위험이 큰 금융상품들의 판매가 늘면서 불완전판매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라며 “일반 금융소비자에 대한 신속한 피해보상 지원과 법적 비용 절감을 위해 한국 금융분쟁 해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금융분쟁을 다루는 기구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금융투자협회 분쟁조정위원회, 소비자원 소비자분쟁위원회 등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금감원 분조위가 대부분의 분쟁을 처리하고 있다.
문제는 분조위의 금융분쟁 조정 절차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해당 절차를 통해 손실을 보상받는 사례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윤창현 전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은행권 금융분쟁을 ‘인용’ 처리하는데 걸린 기간은 416일로 전년 대비 117일이나 증가했다.
인용 결정까지 소요된 시간은 지난 2017년 기준 27일에 불과했으나 2018년 30일, 2019년 91일, 2020년 183일, 2021년 299일, 2022년 년 416일 등 매년 증가해 5년 만에 15배 이상 길어졌다. 은행권 분쟁조정 접수 건수가 2020년 1087건에서 2022년 300건으로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처리 기간은 더욱 길어졌다고 볼 수 있다.
분조위에서 정한 배상 비율도 해외 주요국의 불완전판매 사례와 비교해보면 높지 않다. 2019년 DLF 사태(40~80%), 2020년 라임펀드 환매중단 사태(50~70%) 등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배상비율이 정해졌지만, 2008년 키코 사태(15~41%), 2007년 파워인컴펀드 불완전판매(20~50%),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기발행(20~30%) 등 50% 미만의 배상비율이 적용된 사례가 더 많다.
최근 발생한 홍콩ELS 사태 또한 배상비율이 30~65% 수준으로 결정되면서 피해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3월 분조위 권고안이 발표됐지만, 피해자의 자율배상 동의율은 60~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홍콩 ELS 사태 피해자들이 모인 단체인 ‘금융사기 예방연대’는 지난 5일 창립총회를 열고 분쟁조정 대신 형사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보고서는 국내 금융분쟁 해결제도가 해외 주요국과 달리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분쟁조정을 전담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금융산업규제청(FINRA), 미국중재협회(AAA) 등 여러 금융분쟁 해결기구가 존재하며, 이들 기구가 화해·알선·조정·중재 등 다양한 형태의 금융분쟁 해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분쟁조정 기구가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분쟁의 복잡성이 큰 금융투자업권의 경우 분쟁조정 처리 인력은 2020년 기준 4명에 불과했다. 분쟁조정 전문 인력 1인당 담당해야 할 사건 수는 무려 746건으로 빠르고 정확한 분쟁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금감원 분조위에 편면적 구속력이 부여되지 않아 분쟁조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분쟁 조정 시 투자자는 항소할 수 있지만 금융사는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제도를 말한다. 영국의 경우 분쟁조정 담당 기구인 비영리 독립법인 금융옴부즈만(FOS)에 편면적 구속력이 부여돼 있어, 피해구제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 금융소비자에 대한 신속한 피해보상 지원과 법적 비용 절감을 위해 한국 금융분쟁 해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며 ▲금감원 분조위의 인력·예산 확충 ▲제한적인 편면적 구속력 도입 ▲소비자보호구제기금제도 도입 ▲금융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집단분쟁조정제도 도입 등을 제안했다.
이 연구위원은 “해외 주요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금융분쟁 해결제도는 다양성, 실효성, 독립성 및 전문성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라며 “해외 주요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를 기초로 한국 분쟁해결 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일반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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