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소액주주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상장사 합병과 관련된 법령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두산은 지난 11일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인적분할해 두산로보틱스의 완전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종 구분 없이 혼재된 사업들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끼리 모아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소재 등 3개 분야로 재편하겠다는 것.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을 합쳐 스마트머신 부문에 주력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두산그룹 내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알짜 계열사 두산밥캣을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두산로보틱스로 편입시킨다는 결정에 두산밥캣 주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매출과 영업이익, 기업가치 등에서 두 회사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에도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주식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에 대해 비판이 집중된다.
두산밥캣의 지난해 매출·영업이익은 각각 9조8000억원, 1조4000억원으로 두산로보틱스(매출 530억원, 영업손실 191억원)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다보니 오히려 교환비가 1대 0.63으로 정해졌다. 두산밥캣 주식 100주를 보유하면 두산로보틱스 주식 63주를 받게 된다는 것. 우량사 주식이 오히려 적자사 주식보다 낮게 평가된 셈이다.
실제 두산밥캣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발표된 11일 기준 0.87배로 1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12.6배나 된다. 기업가치가 높아도 주가가 저평가된 만큼 합병비율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합병 시 최근 1개월 및 1주일 평균 종가 및 최근일 종가를 기준으로 양측의 교환비율을 정하게 된다. 이에 따른 평균 종가는 두산로보틱스는 8만114원, 두산 밥캣5만612원이다. 법적으로 합병가액 산정방식이 정해져있는 만큼, 두산이 이를 임의로 조정할 방법도 없다.
이 때문에 기업가치와 관계없이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주식 교환비율을 산정하도록 규정한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기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현행 자본시장법에 대해 “당초 입법취지와는 달리 시장주가에 의해 획일적으로 산정되는 합병가액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론상 가격(시장주가)은 시장에서 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합병가액 산정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면서도 “가격은 기업의 내재가치 이외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매일 변동하게 마련이다. 회사가 합병을 결정할 때는 회사의 시장주가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합병으로 인한 당사 회사의 상호보완성 및 시너지 효과, 회사의 연구개발인력의 자질, 경영진의 자질 같은 무형의 자산들도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 영국, 일본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의 산정을 합병하는 회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대신, 구체적인 산정 근거를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초기에는 시장가치에 따라 주식가격을 결정했지만, 1980년 델라웨어주를 시작으로 시장가치뿐만 아니라 자산가치·수익가치 등을 가중평균하는 방식으로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장래에 예상되는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 계산하는 현금흐름할인법도 활용됐다.
일본 또한 시장주가법과 현금흐름할인법, 유사기업비교법 등 다양한 방식이 합병가액 산정에 활용되고 있다.
대신 이들 국가는 상장사 합병 시 합병비율 산정 근거를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합병 찬반을 정하는 주주총회 이전에 합병의 배경, 경과와 합병가액 적정성을 포함한 합병의 긍정적·부정적 요인 관련 이사회 의견, 합병에 대한 임원의 이해관계, 합병 자금 조달,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포함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독일 또한 합병보고서에 합병목적과 비율은 물론, 합병이 주주의 지분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계열회사 간 합병 시 소멸회사 주주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이번 두산 지배구조 개편 이슈를 계기로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에 나서는 모양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주가뿐만 아니라 자산·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병가액을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책임을 강화하고 계열사 간 합병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두산밥캣 사태 같은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소수 주주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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