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티몬과 위메프에서 대규모 정산, 환불 지연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5일 금융·유통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토스페이먼츠, NHN KCP, KG이니시스 등 전자결제 대행 PG업체들이 추가 피해를 우려해 지난 23일부터 신용카드 사용을 막았다. 또 위메프·티몬에서 할인해 팔아온 상품권은 사용이 중지됐다.
은행들 역시 입점업체에 물건값을 미리 정산해준 뒤 위메프나 티몬에게서 대금을 받는 대출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이에 정산을 받지 못한 입점업체들이 구매를 취소시키고 있는데, 소비자들은 위메프·티몬으로부터 환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티몬과 위메프 등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입점업체는 대략 6만여 곳, 연간 거래액은 2022년 기준 6조9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사 이용자 수만 900만 명을 추산된다.
업계에선 정산 지연 사태에 따른 피해 규모가 최소 1000억 원이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티메프 사태’의 발단인 싱가포르 기반 전자상거래 모기업 큐텐의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된 정산 지연 문제는 확산되고 있다.
티몬·위메프는 최근 선불충전금 ‘티몬 캐시’와 각종 상품권을 선주문 후사용 방식으로 할인폭을 대폭 넓혀 인기를 끌었다.
티몬 캐시를 10% 할인했고 해피머니상품권 5만원권을 4만6250원에, 컬쳐랜드상품권 5만원권을 4만6400원에 각각 판매했다. 배달앱 요기요 상품권도 7∼8% 할인 판매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고객이 결제하면 대금을 두 달 후에 판매자에게 정산해주는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기업인 큐텐이 지난 2월 글로벌 쇼핑플랫폼 위시를 약 2300억 원에 인수한 이후 위메프와 티몬 정산 대금을 끌어다 쓰면서 단기간에 유동성이 부족해지자 계열사에서도 정산과 환불 지연 사태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티몬은 이미 2022년 연결기준 -6386억 원으로 완전 자본 잠식 상태로, 위메프 또한 잠식된 자본 규모가 2398억 원이다.
일각에서는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에 제2의 '머지 사태‘와 판박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머지 사태’는 돌려막기식 사업을 하다 2021년 환불 대란이 발생한 일이다.
당시 포인트를 충전해 20% 할인된 가격으로 결제할 수 있다며 홍보했던 머지포인트가 갑자기 가맹점을 제한하고 환불도 어려워졌다. 몇몇 피해 소비자들은 곧장 본사로 찾아갔는데, 이들만 일부 환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사건을 겪은 수 백 명의 소비자들이 24일 자정을 전후로 환불을 위해 위메프 본사로 찾아간 이유다.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머지 때를 생각하면 새벽에 직접 찾아간 게 마지막이었다”, “소름 돋게 머지랑 똑같다. 머지 때도 그랬고 이중환불 받는 사람 나올 듯 허술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머지포인트 사태는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환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은 머지포인트, 거래를 중개한 이커머스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해 10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는 징역 4년, 권보군 CSO(최고운영책임자)엔 징역 8년과 추징금 약 53억 원이 선고됐다. 사태 발생 후 2년이 지나서야 배상 판결이 나왔지만 여전히 환불받지 못한 피해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머지 사건은 주로 소비자 피해가 컸다면,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에는 판매자들의 대금 문제도 걸려 있어 후폭풍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번 티메프 사태로 인한 판매자(셀러)와 소비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부 당국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정산금 지급이 지연되고 있는 사태와 관련해 “소비자와 판매자들의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 피해 발생 여부를 모니터링하면서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질의에 “미정산 문제는 민사상 채무 불이행 문제로 공정거래법으로 직접 의율(법 적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큐텐 사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등 정부의 신속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5일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범정부적으로 즉각 선제대응해야 한다”며 “중소상공인과 소비자 피해 최소화할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 민주당도 정무·산업정책조정위원회 중심으로 대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플랫폼 공정시장을 구축하고 소비자 피해 방지와 구제 제도를 보완하는 온라인플랫폼법, 전자상거래법 등 관련 법률의 조속한 제정과 개정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에 대한 질책도 나오고 있다.
민병덕 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 9월28일 금융감독원은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 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유효기간을 (올해 9월28일까지로) 2년 연장했으나, 전자상거래 업자와 선불업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행정지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이 이번 사태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에 대해서도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로 돼 있는 ‘대규모유통업법’의 정산 주기 역시 현실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며 “입점 및 납품 업체의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큐텐 계열사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큐텐은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방기하며 기업결합을 통해 유통업계의 공룡이 됐다”며 “어떤 과정을 통해 기업 결합이 이뤄졌는지 과정을 확인하고 무리한 기업결합을 승인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25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소비자의 신뢰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구조다. 거기에 모 회사의 자금 여력이 굉장히 낮은 걸로 지금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넘기더라도 티몬·위메프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티메프가 사실상 돌려막기를 하다가 막힌 것이다. 이번 달 매출을 가지고 다음 달 걸 막는 형식으로 가다가 매출이 꺾이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구조인데, 이런 결제 구조의 기업들은 자금 사정이 취약해 인프라 투자도 어렵다. 이커머스 시장은 결국 배송 싸움인데, 인프라 투자가 어렵다면 악순환 구조가 더 가속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커머스 시장은 지금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앞으로 메이저 몇 군데를 제외한 나머지는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며 “(티메프 사태가) 이커머스 시장의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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